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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도 못 푸는 수수께끼 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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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도 못 푸는 수수께끼 5

현룡재전25 2025. 1. 10. 05:45

 

과학에 의해 많은 문제가 밝혀져 있지만 모든 것들이 밝혀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고고학자가 땅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또는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인지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과학자가 아직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유물 상위 5개를 소개합니다.

 

1. 로마의 중공 십이면체

 

로마의 중공 12면체 1739년에 영국의 애스턴이라는 마을에서 깜짝 놀랄 만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작은 청동 몸체에 12개의 오각형 면으로 되어 있었고, 그곳에 다양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이 물체의 모서리에는 구슬이 붙어 있었는데, 이것은 안정성을 위해 붙여놓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 이런 유물이 유럽 각지에서 약 130개 발견되어 로마의 중공 십이면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유물의 크기와 겉모습은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대에 이 유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몇 개의 십이면체는 동전이 보관되어 있던 곳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소유주가 이 유물을 귀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시대의 문헌에는 이 십이면체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이 유물은 대부분 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발견되었지만 그곳은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 유물이 주로 발견되고 있는 곳은 독일, 프랑스, 영국입니다. 이 십이면체의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비한 것부터 실용적인 것까지 많은 가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연구자 중에는 이 유물이 점을 치기 위한 도구나 지도 또는 의식을 수행하는 데 관계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그 밖에도 로마의 중공 십이면체가 거리개나 촛대였다는 설이나 관의 안 지름이나 진주를 측정하는 도구였다는 설 그리고 아이들의 장난감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히 색다른 가설도 있는데, 예를 들어 이 십이면체가 지금엔 잊힌 어떤 게임의 주사위라든지 현대의 핸드스피너와 같은 것이라는 설 또는 악기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가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증은 없습니다.

 

2. 메누티스

 

메누티스 대하 나일강은 고대 이집트 번영의 기원이었습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에 비옥한 땅을 선사하였지만 특히 풍요로웠던 토지는 강이 지중해로 흘러드는 델타 지대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다양한 시대에 10개의 도시가 번성하였고 그중에는 지금도 존재하는 알렉산드리아나 유명한 로제타 스톤이 발견된 로제타 그리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물 찾기를 한다면, 여기밖에 없을 것입니다. 1989년 프랑스의 고고학자인 프랭크 고디오와 그의 팀은 고대 유적의 탐색을 시작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장소는 물속으로 아부키르만의 해저였습니다.

 

그는 고대 연대기에서만 존재하는 도시를 발견하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현대의 기술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자기장을 측정하는 장치인 자기 센서를 배에 싣고 잔디깎이로 잔디밭을 이동하는 것처럼 만내를 탐색하며 돌았습니다. 그리고 곧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닷속 두 곳에서 자기장을 극도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잠수부들은 잠수로 심해 6m에 도달하여 그곳에서 해저의 모래를 파내어 갔습니다. 그러자 깊이 1.5m의 모래 아래에서 고대 도시 메누티스가 발견되었고 그곳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화려한 건물과 기둥 그리고 이집트인이 숭배하고 있던 여신 이시스의 거대한 동상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장소에서는 카노프스 마을의 수몰된 부분이 발견되었고 해저의 모래 속에서 와인을 담는 용기와 조각 금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주조된 동전의 연도로부터 고고학자들은 메누티스가 침몰한 것이 서기 740년 이후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기준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연구자들도 알지 못합니다. 메누티스에 일어난 대참사에 대해서는 연대기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 밖의 증거도 없습니다. 해저에서 발견된 동전도 그 참사가 갑자기 일어났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약 도망칠 시간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동전이나 그 외의 귀중품을 가지고 떠났을 것입니다. 아마 메누티스 마을은 물속으로 휩쓸렸거나 아니면 바닷속으로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그 원인은 지진이나 쓰나미였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재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3. 켄싱턴 론스톤

 

1898년에 스웨덴계 미국인 농부 올로프 오만은 경작할 수 있는 땅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땅의 나무를 뿌리째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나무에서 그가 놀랄 만한 발견을 했습니다. 사시나무의 뿌리가 빽빽이 얽혀있던 큰 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 모여 이 놀라운 유물을 보고 있었는데, 올로프의 열 살짜리 아들이 이 돌에 무언가 기호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눈 문자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 유물은 켄싱턴 론스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돌에 대해 학자들은 지금도 논쟁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 돌이 가짜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에 온 바이킹이 이 돌을 남겨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만이 돌에 새겨진 비문을 옮겨 적어 학자들에게 보냈더니, 이 유물이 가짜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리고 비문은 다음과 같이 해독되었습니다.

 

‘8명의 기트인과 22명의 노르웨이인이 핀란드에서 서쪽을 향해 탐험의 여행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 돌에서 북쪽으로 하루 떨어진 곳에 있는 두 개의 암초 근처에서 야영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들은 낚시하러 가기로 했다. 우리들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열 명의 남자가 피로 붉게 물들어 죽어 있었다. 성모마리아여! 재앙에서부터 우리들을 구하소서! 14일간 이 섬에서 여행한 곳에는 우리의 동료인 열 명의 남자가 해변에 있어 우리들의 배를 지키고 있다.’

 

1362년 가장 비판적인 학자들은 스웨덴계인 오만이 돌을 비싸게 팔기 위해 자신이 눈 문자를 새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만은 그런 식으로 돌을 비싸게 팔 수 없었기 때문에 돌은 오랜 기간 문지방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오만은 9년 뒤에 겨우 이 돌을 10달러에 팔았지만 그래서 특별히 부자가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현재 이 룬스톤은 미네소타주의 박물관 중 하나에 소장되어 있지만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 수수께끼 같은 노르웨이에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왕 마그누스 에릭슨이 1354년 미국에 파견한 탐색대 대원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4. 아칸바로의 토우

 

1944년 독일 이민자인 발데마르 율스루트가 멕시코의 작은 마을 아칸바로 근처를 지나갈 때 지면 위에 토우와 몇 개의 도자기 조각 그리고 가공된 돌이 떨어져 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율스루트는 이것에 흥미를 느껴 현지 농민에게 이야기를 해보자 그들은 나서서 같은 모양의 장의 유물을 몇 개 정도 찾아 팔아주었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쌌는데 하나에 겨우 10센트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놀라울 정도의 유물이었습니다.

 

가면이나 악기 유물도 있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던 건 토우였습니다. 그중에는 공룡이나 고대 이집트인 수메르인의 토우가 있었는데, 이 지역에 이와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율스 루트는 이 유물에 흥미를 갖고 3만 3천 점의 아칸바로의 토우를 수집했습니다. 최초로 열루미네센스법으로 토우를 분석해 보니 이러한 토우가 만들어진 것이 기원전 2500년쯤이었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센세이션입니다. 하지만 분석 방법에 오류가 있었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 유물의 센세이셔널함도 바로 부정되었습니다. 새로운 자료에 의하면 이 진귀한 토우는 1939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유물이 고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지적에 의하면 율스루트의 컬렉션에는 도자기와 함께 석상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석상에는 위조가 불가능한 침식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칸바로의 토우의 진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론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5. 과달 페랄의 고인돌

 

1926년 독일의 고고학자 후고 오버마이어가 이끄는 조사대가 스페인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과달 페랄의 고인돌로 스페인의 스톤헨즈라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거석구는 영국의 유명한 관광 명소와 유사하고 적어도 영국의 것과 같은 정도로 오래된 유적이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타호강 물가에 있는 가장 오래된 돌은 약 5천 년 전에 설치된 것으로 그 목적은 밝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누가 150개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거석 군을 쌓은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유적은 고대의 신전이거나 매장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돌에 물결 모양의 장식이 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연구자들은 과달페랄에 고인돌이 타호강의 물을 떠받드는 것은 아닐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높이 2m의 선돌에 뱀과 몇 개의 잔이 그려져 있는 것도 그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 해석 중 하나에 불과해서 더욱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곤 해도 이 유적을 조사하는 것이 간단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1963년에 발데카냐스 저수지가 만들어진 후에 이 거석 군이 물에 잠겨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처 : 토픽, 일부추가·편집】